이응노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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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융세 & 장-폴 아고스티

이응노미술관은 고암의 예술적 지지자였던 폴 파케티(Paul Facchetti, 1912~2010)의 아들인 장 폴 아고스티(Jean-Paul Agosti, 1948~), 이응노의 대를 이어 예술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이융세(Young-Sé Lee, 1956~)의 작업을 살펴보는 전시를 개최한다. 장 폴 아고스티와 이융세는 모두 현재 프랑스를 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화가들이다. 이들이 공통분모로 삼고 있는 주제인 자연을 중심으로 두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고자 하는 것이 본 전시의 목적이다.

 

이응노는 57세이던 1960년에 파케티 화랑과 전속계약을 맺은 바 있다. 갤러리스트 폴 파케티가 운영하던 파케티 화랑은 파리 뿐만 아니라 뉴욕, 취리히에 거점을 두고 있던 당대 최고의 갤러리였다. 당대의 미술 화랑은 유럽에서 수집한 컬렉션들의 전시장이었을 뿐만 아니라, 미술가들이 모여드는 장소이기도 했다. 고암 이응노는 파케티 화랑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전 세계적인 작가로 입지를 굳힐 수 있었고, 이러한 사실은 장 폴 아고스티와 이융세가 미술가들을 곁에서 보고 작품을 직접 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랐음을 시사한다. 나아가 성장환경이 그들이 예술가로서 성장하는 데에 미쳤을 영향을 추측할 수 있게 한다.

 

장 폴 아고스티와 이융세는 자연물을 소재로 작업한다. 예술작품의 소재가 되는 자연은 동·서양을 구분하지 않는 오래된 주제다. 그러나 그 발전의 형태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진전되어 왔다. 먼저 자연을 추상화하고자 하는 의지는 대상의 외양을 충실히 재현하고자 하는 구상(具象)의 목표를 벗어난 인상주의 미술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장 폴 아고스티는 붓자국을 통해 물체의 표면에서 반짝이는 빛을 생생한 원색으로 재현했는데, 그 자체가 자율적인 조형요소로 기능한다. 이처럼 색채와 형태의 자율성에 대한 의식은 평탄한 색면의 장식적인 구성, 다양한 붓자국의 조직, 파사주(passage) 기법에 의해 통합된 하나의 붓질 등으로 형상화 되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자연을 소재로 한 회화는 색채의 자율성이나 형태에 의한 화면구성이라는 추상적 형태로 점진적으로 발전해나가며 서양미술의 역사를 수립해왔다.

 

우리나라에서 자연이 화면 내에 고스란히 조형적으로 담기는 형태는 동양의 산수화에서부터 이미 그 뿌리가 시작된다. 특히 본격적인 추상에의 의지는 1970년대 이후 모노크롬 회화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색채를 절제하고 마치 서예와 같은 반복적인 형태를 특징으로 하는 모노크롬 회화는, 그 조형적 특징에 동양적 무위성(無爲城)이라는 해석이 가해지면서 한국적인 형태로 윤곽을 갖추게 된다. 특히 이 시기 많은 모노크롬 화가들이 화면 내에 기법상 자연의 미를 최대한 살리고자 했다. 모노크롬 회화는 자연에 대한 깊은 외경과 조화, 그 내면에 담긴 비물질적 정신세계를 중심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융세의 꼴라주와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다만, 과거 모노크롬 회화가 신체나 물질을 자연과의 합일이나 선적 깨달음과 같은 초월적 지점과 연관 있었다면, 이융세의 회화는 보다 즉물성을 주시하는 방향으로 재해석되었다. 이처럼 모노크롬 회화와의 비교를 통해 이융세 특유의 조형언어와 미감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자연을 소재로 발전해 온 동·서양 회화의 역사는 그 맥을 달리 해왔으나, 현대에 이르러 그 경계는 모호해지고 기법은 혼재된다. 장 폴 아고스티와 이융세의 작업도 단순히 동양과 서양으로 구분할 수 없는 조형기법과 사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고암 이응노 역시 동서양의 교류 속에서 한국적 전통과 서양기법의 특성을 완벽히 이해하고, 이를 적절히 조화시켜 모던아트로 나아간 화가였다. 본 전시는 고암 이응노가 닦아온 기틀 위에서 새로이 조형적 언어를 발전시켜 나가는 화가들의 행적을 좇아볼 뿐만 아니라, 그 예술적 의지를 확인하고 확장된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