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노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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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지원 프로젝트

이응노미술관 작가지원 프로젝트 내용을 소개합니다.
2023 아트랩대전 김채원

개인의 불/행운에 대한 우연의 몫


이선영(미술평론가) 

 

이응노 미술관의 야외공간에 천막을 치고 카드 게임을 할 수 있는 책걸상이 설치된 김채원의 작품은 부담 없는 축제의 장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미술관 안쪽의 중정은 원래 출입 금지 구역인데 축제는 그 경계를 허문다. 작가가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 게임’으로 정의하는 이 작업이 놀이이자 예술인 이유는 놀이의 원칙이나 구성요소를 작가가 모두 결정한 것에 있으며, 그 과정과 결과에 사회적 의미가 부여되기 때문이다. 보드게임과 AR 게임의 버전이 있다. 보드게임으로 설계된 이 작품의 AR 버전에서는 작가가 나눠준 분홍 손 팔찌에 새겨진 QR코드로 카드를 찾는 게임에 참여할 수 있다. AR 버전에서는 관객이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과 연동되어 카드 속 얼굴 이미지가 여러 장소에서 떠다닌다. 미술관 야외 잔디광장 곳곳이 게임의 보드판이 되어 미술관을 한 바퀴를 돌면서 지도를 보고 ‘MOA’를 찾는 게임이다. 게임이 그렇듯이 모아와 관련된 서사가 있다. 

 

계절이 변하는 두 달 동안 야외에서 진행될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작품은 작가가 선택한 게임이라는 형식과 작품을 채우는 내용의 무거움이 게임과 예술작품 모두에 필수적인 긴장감을 부여한다. 긴장의 고조와 고조된 에너지가 풀리는 낙차는 게임/예술의 몰입도를 결정할 것이다. 카드놀이를 모델로 한 이 작품은 놀이를 인류학적으로 분석한 책 [놀이와 인간](로제 카유와)에서 분류한 우연 놀이의 성격을 가진다. 로제 카유와의 [놀이와 인간]에 의하면 놀이는 경쟁(Agon), 우연(Alea), 가장(Mimicry), 현기증(Ilinx) 으로 구별될 수 있는데, 이 네 가지는 상호조합되거나 교차 될 수 있다. [놀이와 인간]에 의하면 놀이의 영역은 계산된 경쟁, 한정된 위험(손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 위장, 위험하지 않은 패닉을 위해서 인위적으로 설정된 일종의 작은 외딴섬이 된다. 김채원의 경우, 목표물을 찾는 과정에서 경쟁하며 운이 중요하다. 

 

카드 패의 분배에 따라 국면이 다르게 전개되며 이는 대표적인 우연 놀이인 주사위 던지기와 같다. 작가가 8세에 겪었던 부모의 이혼 가정의 가장 내밀한 이야기로부터 출발한 내용이 전시라는 공적인 장에 게임으로 구현될 수 있었던 것은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의 긴밀성 때문이다. 이혼이 과거보다 흔해졌어도 아이의 운명을 결정짓는 큰 사건이며, 그자체가 트라우마라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이제는 성인이 되어 다소간 먼일이 된 사건에서 작가가 주목하는 대목은 당시 아이가 아무런 결정권도 없이 어디선가 정해진 결과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폭력적 과정이다. 작가는 ‘부부가 이혼 서류를 제출하게 되면, 그때부터 국가는 이혼 과정에 개입하게 되면서 자녀들에 대한 결정권을 포함한 부부 사이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에 대해 판결권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자녀는 독립된 개체로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양육권에 대한 논쟁에 뛰어들게 된다’고 말한다. 

 

아이를 부모의 부속품 정도로 간주하는 행태는 아이에게 악영향을 주는 과잉보호부터 생사여탈권에 관련된 범죄까지 천태만상으로 벌어지곤 한다. 개인의 운명에 개입하는 우연의 몫에 대한 메시지는 이혼이라는 소재 또한 개인의 운명을 결정하는 광범위한 선택지 중 하나라는 보편성을 부여한다. 인간은 국가, 가정 등으로 대표되는 사회라는 상징적인 우주에 태어난다. 애초에 선택권은 없다는 점에서 우연의 몫은 생각보다 크다. 그리고 그 우연이 단지 우연으로서가 아니라 힘을 발휘하는 것은 시스템이라는 필연성 때문이다. 작은 우연은 큰 결정타로 개인에게 남겨진다. 작가는 현대사회가 더 시스템으로 엮이면서 개인의 자율과 자유는 명목상의 항목이 되어가는 상황을 게임으로 펼친다. 근대에 들어와 개인은 유례없이 촘촘하게 국가권력에 엮이게 되었다. 정보화는 초연결사회로 진입시켰다. 근대국가에서는 전체 국민의 이익과 반드시 일치한다고 할 수 없는 전쟁시에 권력자가 국민에 총동원령을 내릴 수 있다.

 

규모의 경제가 필수적인 현대 사회에서 인구 문제는 국가의 부, 즉 경제 발전과도 관련된다. 특히 사유 경제에 기반한 사회에서 상속권을 가지는 후손에 대한 규정은 매우 중요하며 결혼제도의 기반이 된다. 개인은 단지 개인이 아닌 것이다. 조르조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에서 미셀 푸코의 연구를 참조하여 서양의 근대국가는 전례 없을 정도로 주체에 대한 개인화 기술들을 대상에 대한 전체화 과정들과 통합시켰다고 주장하며, 이는 ‘개인화, 그리고 이와 동시에 진행된 근대 권력 구조들의 전체화로 이루어진 정치적인 이중 구속’이라고 말한다. [호모 사케르]에 의하면 푸코는 고대에서 근대세계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개인으로 하여금 자아를 대상화시키고 또 스스로를 주체로 구성하는 동시에, 외부적인 통제 권력에 묶어버리는 주체화 과정들에 대한 탐구했다. 공적영역이 사적영역과 내밀하게 연결되기 위한 조건은 권력이 단지 억압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셀 푸코에 의하면 쾌락과 권력은 서로를 부정하지 않으며, 서로에게 새로운 활기를 준다. 푸코는 19세기에 인문학이 탄생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훈육(discipline)과 규범화(normalization)의 예를 든다. 김채원의 작품은 결혼과 이혼이라는 큰 문제를 소재로 하지만, 전체화와 개인화를 동시에 완성하는 권력이 그물망은 내밀한 성(性)의 영역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 푸코는 [성의 역사]에서 성적 욕망은 파악하기 힘든 은밀한 현실이 아니라, 앎과 권력의 몇몇 중요한 전략에 따라 서로 연관되는 거창한 표면 조직망이라고 본다. 성에 대한 억압보다는 오히려 성적 욕망의 산출이 문제이다. 푸코에 의하면 어떤 사회도 사회적 육체를 구성하고 성격짓는 다양한 권력관계가 존재한다. 김채원의 작품에서 권력의 그물망은 가족법이라는 담론을 바탕으로 한다. 성, 사랑, 가족 등 변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된 ‘본질’이 권력의 그물망으로 대체되어야 게임이 가능하다. 

 

작가가 직접 제작한 카드의 패가 돌려지면서 우연에 맡겨진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화사한 색상으로 제작된 예쁜 ‘MOA 카드’는 게임의 참여자들도 가져갈 수 있다. 에코지에 명함 크기로 만들어진 카드는 아이를 둘러싼 주요 인물인 친인척의 얼굴이 새겨진다. 게임 때 돌려지는 ‘MOA 카드’는 일종의 가족 카드로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삼촌,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이모, 외삼촌 등의 총 8명의 가족으로 이뤄진 카드이다. 아이의 운명에 영향을 주는 인물들은 만화처럼 그려진 외국인으로 디자인되었는데, 그 또한 혈연공동체와 관련된 묵직함을 걷어내는 요소다. 그러한 간단한 형식적 조치만으로도 남의 이야기인 것처럼 거리두기가 가능한 것이다. 로제 카유와는 ‘놀이는 현실 생활의 정상적인 상태인 혼란을 완벽한 상황으로 대체하려는 시도’이며,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은 세계를 다르게 만들어서 세계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놀이와 인간]에 의하면 모든 놀이는 환상(illusion; 이 말은 문자 그대로 놀이에 들어가는 것 in-lusio를 뜻한다)은 아니지만, 약속에 의해 정해지고 몇 가지 점에서는 허구적인 하나의 닫혀진 세계를 일시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전제로 한다. 현실 속에서 우연은 행운일수도 불운일수도 있고 그 파장이 실제적이지만, 게임 속에서는 즐길만한 상황이 된다. 하지만 당시 김채원은 이혼 때문에 얼마간 학교도 못 다닐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어머니와도 반년간 떨어져 있을 때 아이를 되찾기 위한 외가 쪽 친지들의 여러 시도들이 게임의 내용이 된다. 이모가 많았던 아이에게 아이의 향방을 둘러싼 사연은 풍부했을 것이다. 아이는 카드 이름이자 전시 제목 [모아를 찾아서 Finding MOA! GAME]가 된 ‘MOA’ 아파트에 있었고, 아이를 (되)찾기 위한 친척들의 여정이 게임의 내용이 된다. 그 여정에는 여러 선택지가 있다. 이동 카드는 버스(1점), 택시(2점), 기차(3점), 비행기(4점) 총 4종류다. 

허리가 좋지 않은 할머니는 집 앞에서부터 도착 장소까지 한 번에 갈 수 있는 택시를 이용하려 한다. 할머니와 함께 택시를 타고 모아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택시 카드를 가진 이의 점수가 올라가는 식이다. 친인척 중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이가 이모라는 사실은 한국 사회에서의 가족관계를 반영한다. 천막과 그늘막으로 이루어진 게임 장소는 ‘집House’으로 명명되고 설치된다. 5인이 참여하며 20분 정도 걸리는 게임은 오프닝 날 퍼포먼스처럼 펼쳐진다. 작가는 ‘게임을 하면서 관객들은 의도치 않게 모아에게 간섭하게 되고, 모아에 생각하며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그것을 찾으며 찾음과 동시에 게임에서 승리하며 모아에 대한 권한을 한시적으로 갖게 된다’고 말한다. 관객은 지나가다가 참여할 수도 있지만 규칙이 다소간 낯설기 때문에, 참여자들은 사전 모집되기도 한다. 불특정 사람이 참여하고 상호작용하는 열린 예술작품은 번거롭기도 하고 위험부담도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작품을 감행하는 이유는 놀이처럼 결정되는 개인의 운명에 대한 작가의 깊은 관심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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