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UNGNO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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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t d'exposition

2023 아트랩대전 김영진

존재의 겹침과 펼침 / 이슬비(미술비평가)  

 

김영진은 투명함에 집중해 왔다. 투명한 것은 불분명하고 모호하다. 어떤 현상이나 사건, 감정, 경험 등 표면적으로 또렷이 드러나지 않는 잠재적인 것,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추상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는 포토그램(photogram)을 이용해 이미지를 만든다. 인화지 위에 사물을 놓고 빛을 비추면 빛이 닿은 부분은 검은색으로 닿지 않는 부분은 흰색으로 나타나며 사물의 흔적이 새겨진다.

 

그에게 포토그램은 존재와 부재, 비움과 채움, 실재와 허구 등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흑과 백 사이의 수많은 의미를 내포하는 특별한 장치이다. 빛은 어둠을 껴안으며 미지의 존재가 되고 실제 사물이 보여주지 못한 새로운 감각을 경험하게 한다. 포토그램은 그 특성상 인화가 끝날 때까지 결과물을 예측할 수도 없고, 작가가 모든 것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도 없다. 그 자체로 다양한 우연과 불연속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삶과 닮아있다. 

그렇다면 카메라도 필름도 없이 포토그램으로 제작한 작업은 사진인가? 회화인가? 포토그램은 사진의 발명 초기부터 알려진 오래된 기법이지만 사실 그것의 범주를 명확하게 제한하기는 어렵다. 또 다른 질문을 던져보자. 김영진은 사진 작가인가?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사진 작가로 규정할 때 어색하기만 하다. 스스로 흑백의 아날로그 사진을 고수해야 한다는 강박도 없다. 중요한 것은 그가 표현하고 싶은 것이다. 수채화를 그릴 때 수채화 종이가 필요하듯이 그는 단지 인화지라는 특수한 종이를 사용하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몇 가지 새로운 시도가 엿보인다. 포토그램 작업은 일상의 사물 대신 땅의 질서를 간직한 자연물로, 빛이 통제된 암실에서 벗어나 야외에서 자연광을 이용한 루멘(lumen) 프린트 방식으로 제작됐다. 흑과 백으로 이루어진 기존의 절제된 작업이 이번에는 햇빛의 양, 사물이 머금은 수분의 정도, 시간의 길이, 인화지의 종류 등에 따라 다양한 색상과 형태로 드러난다. 

 

포토그램 작업이 여러 조건에 섬세하게 반응하는 색과 이미지를 은유적으로 보여준다면 설치 작업 <움직이는 정물>은 유리나 인화지 위에 철근이 박힌 콘크리트 조각, 부서진 벽돌 등 건물의 잔해와 뿌리를 드러낸 식물이 뒤엉킨 모호한 사물에 가깝다. 일부 작품은 철재로 제작된 좌대 위에 설치되어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사물이 새로운 관계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시각적 형태라는 것이다. 

김영진은 대전의 한 동네에서 오랫동안 거주하며 그곳이 재개발되는 과정을 목격했다. 자신이 사는 도시에서 일상의 공간이 얼마나 힘없이 부서져 버리는지 주목하기 시작했다. 재개발은 기존의 장소가 가진 기억과 흔적은 싹 쓸어버리고 전혀 다른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 그는 동네 곳곳을 산책하며 허물어진 건물 사이로 남겨진 나무와 풀에 눈길을 건넸다. 개발이 시작되면 사라지지만 식물들은 폐허에서 오히려 생명력을 내뿜으며 무성하게 자란다. 인간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생존하는 역동적인 생태계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삶 속에서 다른 생명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경제와 자본의 논리만 따지는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투명한 존재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의 배경이 아니라 삶의 일부이다. 우리 역시 이들과 함께 뿌리 뽑힌 채 말라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작가는 사라지기 전에 이들의 존재를 기록하고 또 다른 자리에서 살리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으로 나아간다. 이들의 들숨과 날숨은 순간을 포착하는 사진 한 컷으로는 결코 담을 수 없는 장면이다. 

 

김영진이 제안하는 새로운 관계성은 페미니즘 이론가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과 비인간, 생물과 무생물의 얽힘, 안으로 말리고 밖으로 펼쳐지는 관계성을 인식하고 함께 생각하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의 성찰이다. 그가 작업 대부분을 포토그램으로 제작하는 것은 이 방식이 카메라라는 매개 없이 빛과 인화지 위의 사물이 직접 접촉해서 특별한 상호작용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촉감은 모든 관계의 본질적 요소로, 물리적 접촉이 없으면 긴밀한 연결고리도 발생하지 않는다. 

 

포토그램을 처음 시도한 <섬>(2016~2017) 연작은 2015년 쯤 시작된 작가의 전혀 다른 두 가지 경험에서 출발한다. 당시 그는 아이슬란드의 외딴 바닷가 마을에서 짧게 체류하며 시린 추위 속에서 시간 감각을 상실한 채 고요와 적막을 마주했다. 그곳은 낮과 밤의 구분이 모호했고, 하늘과 바다의 구분이 불분명한 온종일 회색빛이 가득한 세계였다. 또 다른 경험은 투병 중인 아버지가 온종일 누워계신 하얀 병실에서 이루어졌다. 프랑스에서 유학 중인 작가는 몇 년간 여름 방학을 한국에서 보내며 아버지가 병환으로 점차 쇠약해지는 모습을 목도했다. 차가운 에어컨 바람 사이로 들리는 아버지의 가냘픈 숨소리와 침묵의 시간은 묘하게 얼음 섬의  기억을 상기시켰다.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불안과 두려움이 만들어 낸 투명한 감정은 그의 작업 전반의 근간을 이룬다.  

 

<섬> 연작에서 확대된 유리컵은 커다란 고요 속에서 얼음으로 이루어진 섬처럼 보인다. 투명한 미지의 세계는 마치 부유하는 느낌을 선사하는데, 작가는 <우주> 연작(2018)을 통해서 투명한 유리컵 속에서 광활한 우주를 발견하기도 한다. 가장 긴밀한 관계의 부재와 상실의 경험은 이후 사회 속에서 또 다른 죽음에 관한 사유로 확장되었다.  

 

아동학대로 사망한 아동, 갑작스러운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 등 매일 쏟아지는 죽음에 관한 기사는 투명하고 부서지기 쉬운 존재의 또 다른 이야기였다. <나비> 연작(2021)에서는 익명의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떠올리며 나비 형태의 종이접기로 그들의 삶과 죽음에 대해 질문을 던졌고, <미완의 형태>(2021)에서는 종이접기가 완성되기 이전의 다양한 기하학적 형태와 삶의 여러 과정을 오버랩시켰다. 이러한 죽음은 언제 어디서든 마주할 수 있는 일들로, 작가에게 작업은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보이는 것과 보이는 것 너머의 관계성을 사유하고 기억하는 애도의 시간이었다. 

 

지난해 선보인 전시 《마주하는 마음》(2022)은 작가가 자신의 불안한 내면을 마주하고 깊게 파고든 작업이다. 그는 해소되지 않은 감정들이 뭉뚱그려진 채 툭툭 튀어나오는 경험을 움직이는 공에 비유했다. 그리고 부유하며 여러 갈래의 방향으로 중첩되어 풀리지 않는 잔상을 알파벳 형태의 종이접기를 통해 그 흔적을 담아냈다. 작업 자체가 어느 순간 감정에 얽매여 불안이 가중되는 상황을 해소하고 마음을 덜어내어 삶의 균형을 모색하는 과정이었다. 그 때문인지 이번 전시에서는 자연스러움과 생명력이 두드러진다. 

 

김영진의 작업은 다양한 존재와 관계에 관한 여러 겹의 사유를 연결하고 펼쳐내며 삶의 유의미함을 환기시킨다. 그가 만들어낸 빛과 어둠의 정원은 나 자신이 무수한 다른 존재들과 얽혀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모든 존재가 함께 숨 쉬는 무한한 시공간이다. 끊임없이 생동하는 존재와의 교감은 온전히 나를 채우는 과정이자 비워내는 경험이다. 


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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